2007년 대비 정재준 조선시대 모의고사 40문제를 풀고 공부한 날짜: 2012년 1월 31일(화)
문제 푸는 데 걸린 시간: 16분(1~20)+16분(21~40) = 32분
점수: 72.5점 (29/40)




7.

[ 조선 전기 통치 체제 ]
● 서울에 경재소를 두고 지방을 통제했다.
● 관리들은 주요 관서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당상관과 실무를 담당하는 당하관으로 구분되었다.

8.
[ 조선 전기 경제 제도 ]
● 각 군현의 공물 종류와 양을 공안이라는 장부에 규정하였다.
● 수확량을 기준으로 토지 면적을 표시하는 결부법을 사용하였다.
● 역참제도는 태종 때 정비되었다.

9.
[ 조선초기의 미술 ]
● 일본의 무로마치(室町)시대 미술에 영항을 주었다.
● 양반들 사이에 자신의 영달을 기념하는 초상화가 유행하였다.
● 안견을 비롯한 최경, 이상좌, 등 화원 출신 화가들의 활동이 돋보였다.

10.
서인의 영수는 송강 정철이다.
http://iris6574.blog.me/150128358502

11. [ 우리나라 법률의 발전과정 ]
● 고조선은 반고가 지은 [한서지리지]에 3조법만이 전한다.
● 고조선의 8조금법 중 절도죄를 지은 자는 노비로 삼았다.
● 조선시대 민법은 관습과 주자가례에 따랐으며 상속에 관한 것은 종법이 존재하였다.

12.
● 태조 -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였다.
● 태종 - 도평의사사를 없애고, 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다.
● 세조 - 경국대전을 편찬하기 시작
● 성종 - 홍문관을 설치하고 경연을 활성화하였다.

13. [ 경제 구조의 변동 ]
● 고려 후기 ~ 조선 초: 재와 인분을 사용하는 시비 기술의 발달로 연작상경의 토지 이용 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.
● 18세기 중엽 이후 덕대제가 유행하여 광업에서도 분업에 기초한 협업의 형태가 갖추어져 갔다.
● 대동법의 실시로 등장한 상인은 공인.

14. [ 조선 후기 신분 제도와 부세 제도 ]
● 숙종 때 주장된 호포법(양반, 상민 구별 없이 호를 기준으로) ↔ 영조의 균역법
● 농민층의 분화와 신분제의 변동으로 인해 18세기 후반부터는 총액제를 강화하여 부세수취의 안정을 도모하였다.
● 대동법 - 토지 결수에 따라 부과

15.
정조는 국왕 친위대인 장용영을 설치, 왕권 강화.

16. [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과 저작 ]
● 이익   - 한전제 - 성호사설
● 정약용 - 여전제 - 전론
● 홍대용 - 지동설 - 의산문답
● 박제가 - 북학론 - 북학의

17. [ 조선 시대 사회제도 ]
● 보상은 비교적 값비싼 제품을 판매
● 부상은 일용품을 판매한 등짐장수
● 촌락 공동체의 조직으로 향도ㆍ계ㆍ두레 등

18.
● 와언(訛言): 나쁜 소문을 퍼뜨린다
● 정소(呈訴): 지방관이나 악덕지주들의 죄상을 폭로하기 위해 집단으로 상급기관에 항의하는 것

19. [ 조선 시대 관직과 그 역할 ]
● 도승지 (=도령) - 정3품 당상관 - 승정원의 6방 중 이방(吏房)의 사무를 관장
● 관찰사 - 수령을 평가하여 등급을 매겼다.
● 대사헌 - 언관으로 간쟁권과 서경권을 가졌다.
● 영의정 - 재상의 직임으로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.

20.
비변사는 중종 때 삼포왜란을 계기로 처음 설치되었다.

22.
● 북인은 서경덕의 영향을 받았으며 노장사상을 수용하였다.
● 소론은 내정개혁에 치중하였으며 양명학자들을 다수 배출시켰다.
● 중농학자들은 대개가 남인출신이었다.

23.
● 향도계는 동계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의 자생적 조직
● 사족의 촌락지배 조직은 향약과 유향소
● 서원과 향교는 성리학적 지배이념을 전파하면서 사족의 향촌 지배를 보완하였다.

24.
● 17c는 예학의 시대

● 사례(士禮)를 중시하는 송시열 등 서인
vs.
● 허목․윤휴 등 남인은 왕례(王禮)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다.

25.
이종휘, 유득공 -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지방으로 확대

28. [ 조선 시대 관제 ]
● 국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승정원에 6방이 설치되어 도승지와 승지들로 충원되었다.
● 한성부-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법권을 행사하였으며 토지와 가옥의 소송도 담당하였다.

29. [ 조선 시대 농민의 사회ㆍ경제적 처지 ]
● 양천제가 점차 반상제로 변모되어 갔다.
● 세조 때에는 보법(保法)을 실시하여 양인 장정을 철저하게 파악하였다.
● 요역(徭役)은 15세기 후반부터 토지 8결을 단위로 한 사람의 일꾼을 내는 제도(八結出ㆍ夫制)로 바뀌었다.

30.
조선시대 서원 -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현(儒賢)들에 대한 제향과 강학의 기능을 가졌다.

32.
노비종모법은 영조때 시행되었다.

33. [ 양명학 ]
● 성리학의 현실적 한계성 때문에 수용되었다.
● 존언만물일체설을 주장하는 정제두에 의해 강화학파가 결성되었다.
● 양명학은 지행합일의 실천성을 중시한다.
※ 양명학과 북학파는 관련성 없음.

34. [ 조선 후기의 토지 제도 ]
● 논농사에는 이앙법(移秧法)이 ,밭농사에는 견종법(畎種法)이 발달하였다.
● 상업적 농업과 도조법(賭租法) 등을 통하여 부농층이 성장하였다.
● 18세기 말에는 저수지와 보(洑)를 중심으로 한 수리시설이 대폭 확충되었다.

35.
실학은 유교적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.

36. [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]
● 허생전, 양반전, 호질 - 한문소설
● 신윤복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들의 풍속을 묘사한 풍속화를 즐겨 그렸다.

39. [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사회경제적 개혁론 ]
● 이익은 한전론을 주장하고, 나라를 좀먹는 6가지 폐단을 지적하였다.
● 유수원은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 혁신을 강조하고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.
● 양반 집안의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.

40. [ 조선시대 각종 서적 ]
① 전순의의 [의방유취]는 왕명에 의해 집대성한 동양 최대의 의학백과사전이다.
② 태종때의 [혼일강리역대국도]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크게 그렸고 아메리카는 빠져 있다.
③ 세종때의 [신찬팔도지리지]는 조선왕조 최초의 지리서이다.
④ 세조 때 - 양성지 [동국지도]는 전국을 오방색으로 칠하여 국토를 오행사상으로 바라보고 있다.